시간의 켜를 담은 연남동은 익숙함과 새로움이 결합해 묘한 매력과 감성을 느끼게 한다여느 동네에나 흔히 있는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새로운 가치를 향유(享有)하듯 설렘을 주는 공간이 가득하다상업시설로 재탄생한 공간은 주인장만의 취향이 다양한 방식으로 꾸며져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더한다골목 곳곳에서는 시각을 미각으로 견인하는 세계 각국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즐비하고손길이 스민 아기자기한 소품가게나 디자이너들의 공방도 옹기종기 모여 있다연남동 로컬을 매개로 물질과 공간 그리고 공감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일상이 온라인 중심으로 이동하고 가상의 공간에서 경험을 하는 시대지만 사람들은 두발로 걸어 다니는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집 외에는 어떤 것도 전혀 없을 것 같은 좁은 주택가 골목에 숨어있는 핫한 가게를 찾아 나선다

 

버섯돌이 세상


홍대에서 연남동으로

대학교가 위치한 홍대는 대학로, 신촌과 더불어 서울에서 대표적인 젊음의 거리로 꼽힌다. 우리가 보통 홍대 앞에서 만나자고 할 때 홍대 앞은 홍익대학교가 아닌 더 넓은 지역을 의미할 만큼 복합적인 상징성을 띤다홍대거리는 인디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고 클럽문화를 즐길 수 있는 예술문화공간과 다양한 상업시설을 원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에서 비롯됐다. 특히 홍대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다양한 복합문화공간 및 화방들은 오래전부터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왔다. 하지만 문화 생산자의 역할을 했던 라이브 클럽은 오늘날 춤을 추는 댄스 클럽으로 변질돼 클럽문화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실종시켰다

 

게다가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고 상업 자본이 기획한 공간,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등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홍대 특유의 문화적 의미도 퇴색됐다. 경제적 가치를 우선하는 상업주의화 및 소비문화 공간화는 홍대에서 그동안 공감과 커뮤니티 역할을 담당해온 문화예술적 공간과 주체들의 설자리를 좁히거나 박탈시켰다홍대에서 설자리를 상실한 그들은 자생적 문화 공간으로 발현될 수 있으면서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임대료가 상승함)을 피할 수 있는 연남동, 연희동으로 향했다. 그 움직임은 연트럴파크라고 불리는 경의선숲길이 조성되면서 시작됐다.

 

경의선 숲길, 새로운 경관을 만들다

2010년 신공항철도 홍대입구역이 개설된 후, 2012년에는 버려진 철길을 활용한 문화 산책로인 경의선 숲길이 조성됐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연트럴파크의 원래 이름은 경의선 숲길이지만 지금은 연트럴파크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기존의 공원 형태에서 벗어나 여러 지역을 연결한 경의선 숲길은 과거와 현재, 세대와 세대를 잇는 도심 속 산책하기 좋은 공원으로 사람들이 즐겨 찾는 로컬이 됐다. 폐선된 철로를 따라 조성된 숲길은 가로수와 잔디밭 그리고 곳곳에 광장이 배치돼 조화를 이루며 문화행사와 지역축제의 중심지로서 시민참여를 이끌어 낸다. 경의선 숲길 양쪽의 이면도로를 따라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작은 상점과 저마다 개성을 담아 새로 만들어진 공간들은 시선을 끈다

 

이렇게 백년의 역사를 새로 쓴 경의선 숲길은 시민과 함께 완성하는 공원으로 주변 공간도 변모시키고 있다. 홍대의 장소적, 문화적 특성 때문에 홍대를 떠나지 못했거나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되면서 밀려난 문화예술인과 소상공인들이 홍대 상권과 연결된 장소인 연남동 골목 속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개성 넘치는 카페,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골목길 맛집 그리고 아기자기한 공방과 독립서점 등 힙한동네의 대명사로 연남동의 새로운 경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주택 골목에 이런 데가 있어?

연남동은 걷는 것만으로도 감성이 충만 된다. 연남동은 위치상으로 서울 어디로든 이동이 편리한 지역이지만 1970년대의 단독·다세대 주택이 개발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밀집해 있다주거와 상업공간이 혼재된 연남동이 핫플레이스로 변모한 이유 중 첫 번째가 옛 모습을 간직한 주택가라는 점이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익숙함과 새로움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공간이 7080세대에게는 향수로 다가오고, 젊은 세대에게는 골목 탐방이라는 흥미로움을 선사한다두 번째는 동네 구석구석까지 혈관처럼 뻗어 있는 작은 골목길들이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다시 여러 갈래의 작은 골목길이 펼쳐져 그 골목마다 무엇이 있는지 더 궁금해지고 무언가 찾고 싶게 한다. 주택가 골목을 걷다 보면 이런 데가 있어?”하며 뜻밖에 시선을 끌게 하는 작은 상점이 나오기도 하고, 갤러리 또는 아담한 레스토랑이나 카페도 만날 수 있다. 연남동의 작은 골목길은 감성과 공감을 이끌어 색다른 골목 탐방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로컬 크리에이터 라운지 연남동


성수동이 공장건물을 개조해 새로운 감성공간으로 재해석했다면 연남동은 연식이 오래된 저층의 단독과 다세대 주택을 개조해 리테일 콘텐츠 요소를 결합시켜 감성을 더했다. 단순히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공간에 콘텐츠를 담아 연남동 만의 특색을 보여준다그 중 대표 콘텐츠 공간이 연남장과 연남 방앗간이다. ‘연남장은 특정 동네를 탐구하는 잡지 아는 동네와 공유공간을 설계·운영하는 로컬 스케치그리고 도시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어반플레이가 협업한 콘텐츠 공간이다.

 

<연남장>


40년대 유리공장이 로컬크리에이터 라운지로 변신한 연남장은 연희동 굴레방다리 옆,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붉은 벽돌의 외관만으로는 이곳이 크리에이터 라운지라고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다소 삭막함이 감돌지만, 내부에 들어가면 유럽의 살롱을 보는 듯한 높은 층고와 대형 샹들리에 그리고 커다란 테이블이 여기가 창작을 발신하는 공간임을 알려준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카페, 레스토랑, 코워킹 스페이스, 스튜디오, 콘텐츠 숍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연남 방앗간>


연남 방앗간은 동네 창작자들을 발굴하고 유통하는 공간콘텐츠 기획사인 어반플레이가 도시(urdan)와 놀이(play)를 결합한 회사 이름처럼 지역의 문화콘텐츠를 발굴해 도시를 재생시키고 재미있는 놀이터가 되도록 만든 공간이다. 1970년대의 주택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 연남 방앗간은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편집상점이자 식음료 기반으로 연남동을 경험하고 소비하는 놀이터가 됐다. 연남장과 함께 지역 문화를 기반으로 지역소상공인, 창작자의 콘텐츠 중심으로 지역의 자원, 문화, 커뮤니티를 연결해 로컬크리에이터에게 기회의 장()으로서 연남동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연남동 독립서점을 즐겨본다

가벼운 독서와 향기로운 커피를 즐기고 싶다면 지성과 낭만이 샘솟는 공간 연남동 북카페를찾아가보는 것도 좋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카페꼼마는 연남동에 빵꼼마이름으로 책과 베이커리를 접목해 인근에서 최대 규모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주택가 한적한 곳에 위치한 빵꼼마 2호점은 미니멀 콘셉트로 독서와 업무 그리고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연남동 독립서점


산책과 함께 테마형 서점을 만날 수 있는 곳도 있다. 경의선 숲길을 거닐다보면 대형서점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공간 경의선 책거리를 맞닥뜨리게 된다. 도시재생 공간이자 책을 테마로 한 복합문화공간인 경의선 책거리는 삶의 지혜를 시민들과 나누고 출판 산업의 발전을 지향하는 콘텐츠 공간이다. 잔디공원이 길게 펼쳐진 산책로를 따라 이어진 기차 모형의 부스들은 테마별로 특색 있게 꾸며졌다. 경의선 책거리를 필두로 연남동은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전문서점에서 인문학 관련 서점들까지 골목길에서 만날 수 있다

 

연남동에 독립서점들이 많은 이유는, 인쇄소와 출판사 및 문화예술인들의 집결지가 되어온 홍대 대학가에 대형 상업시설이 들어서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관련 시설들이 파주로 대거 이동했기 때문이다. 홍대 변방에 머무르고 싶은 몇몇 인쇄소와 출판사가 연남동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출판사를 비롯해 독립서점들이 자연스럽게 골목길을 채우며 자리를 잡았다. 연남동의 독립서점은 대형서점에서 구입하기 어렵거나 출판사 자체적으로 기획한 책 그리고 소수를 위한 소량 출판물 등을 갖춰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독특한 개성과 전문성으로 소비자와 소통을 꾀한다

 

<빵꼼마>


상품소비에서 공간 소비로 이행

홍대부근에서 20년을 살았다. 홍대에서 공부하며 다양한 공간을 오랫동안 즐겨왔지만 현재 주로 장소를 소비하는 곳은 연남동이다. 사람들의 인식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나 보다. 소비자는 상품소비 중심인 시끌벅적한 홍대를 벗어나,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있고 골목마다 흥미로움을 품고 있는 연남동이라는 장소를 소비하고 있다. 주택가 골목마다 과거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공간과 공감 그리고 정취를 느끼게 하는 연남동은 독립서점, 카페, 작은 상점, 갤러리 등 아날로그적이지만 한 문화를 이루고 있다.

 

연남동의 키워드는 로컬과 골목이다. 로컬은 단순히 시골이나 고향을 의미하지 않고 사람들의 삶 터이며 지역적 특색을 뜻한다. 지역 크리에이터들과 결합한 연남동은 주택과 상업공간을 결합하고, 주민과 소상공인과 연결해 지역문화의 특색을 살렸다. 연남동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의 골목골목을 천천히 둘러보자.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한 새로운 공간과 공감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패션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재편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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