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축이 온라인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소비자는 더 이상 얼굴을 보며 물건을 사지 않는다. 코로나 19 이후 가상공간을 자주 접하게 된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데도 소비자는 오프라인 공간의 물리적인 가치와 의미를 떠올리며 가상공간에서 느끼지 못한 감각을 실제로 경험하고 싶어 한다. 오감을 자극하며 감성과 영감을 직접 얻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니즈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브랜드들은 소비자의 접점을 유도하기 위한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공간 디자인 전략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지난 2월에 오픈한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과 이 달 오픈한 아더에러의 아더스페이스3.0 신사점이 있다. 이들 브랜드는 방문객에게 공간의 미적 가치를 제공하고 제품과 브랜드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브랜드 디자인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즐거운 경험의 끝판왕, 젠틀몬스터 도산하우스
글로벌 패션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강남에 ‘HAUS DOSAN(하우스 도산)’을 오픈하며 퓨처 리테일의 시작을 알렸다. 건물에 쓰여진 ‘HAUS 0 10 10 10 1’ 로고의 ‘HAUS’는 퓨처 리테일을 의미하며, ‘01’은 양자역학적 개념으로 여러 브랜드가 모여 만들어나갈 미래의 방향성을 뜻한다.
하우스 도산이 기존의 젠틀몬스터와 다른 점은 퓨처 리테일 공간으로서 1층 라운지 공간부터 제품이 아닌 거대한 설치물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공간에서 ‘즐거운 몸의 경험’을 알리는 브랜드의 도전정신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하우스 도산의 또 다른 매력적인 공간은 자사 코스메틱 브랜드 ‘탬버린즈’이다. 이 공간은 기존 코스메틱 공간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조형물과 오브제 등 감각적인 분위기로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가치와 우아함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여기에 젠틀몬스터의 판타지를 더한 디저트 카페 ‘누데이크’는 방문객의 미각을 자극하는 공간으로 미디어 설치물이 공간을 감싸며 독특한 모양의 달콤한 디저트가 고객들을 반긴다.
이렇게 하우스 도산은 젠틀몬스터가 운영하는 브랜드들을 한 공간에 모았다. 이는 플래그십 스토어로써 단순히 시각만 강조하는 물리적 공간과 제품만으로 채워진 공간이 아닌 그동안 느끼지 못한 다채롭고 깊이 있는 경험이 가능한 공간을 제시함으로써 제품과 브랜드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젠틀몬스터는 지속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며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고객과 소통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절대적 지지를 받는 아더 스페이스 3.0 신사점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 만든 브랜드 ‘아더에러’ 역시 전 세계가 주목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패션을 매개로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고자 하는 아더에러는 홍대 매장에 이어 아더 스페이스 2.0 성수점을 브랜드와 소비자가 소통할 수 있는 창의적인 공간 디자인으로 설계했다.
이후 젊은 세대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되면서 아더에러는 성수점 공간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한 새로운 버전인 플래그십 스토어 신사점 ‘아더 스페이스 3.0’ 공간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아더에러 플래그십 스토어의 파사드는 아더의 시그니처 재료인 적벽돌을 기반으로 설계된 직각 구조 외관이 특징이다. 성수점에 이어 신사점도 적벽돌의 직각 구조이지만 성수점과 달리 외벽에 시공간의 이동 과정에서 생긴 충돌과 균열을 3개의 해체적인 창문으로 표현해 행인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총 6개 층이 각각의 스페셜 섹션으로 구성돼 있으며 후면 계단 형태의 테라스는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6층 루프탑까지 이어진 계단을 올라갈수록 방문자에게 다음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내며 마치 계단을 통해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이미지를 준다.
계단이 시공간을 상징하며,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건물의 실루엣은 각자의 리듬을 가진 고유시간들의 마찰과 변이, 연결 속에서 하나로 융합돼 무한하게 뻗어감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또한 3D 기반 디지털미디어 아티스트와의 긴밀한 협업으로 아더의 뉴미디어 아트 커뮤니케이션을 표방하며 아더 스페이스 3.0의 메인 오브제 ‘변형 물질 큐브’는 결국 ‘시공간의 연결’로 재해석된다.
각 층의 공간은 아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들로 꾸며졌으며, 마치 전시관을 둘러보는 듯 공간마다 아더의 아이덴티티를 기록하며 미래를 향해 나가는 과정을 방문객과 공유하고 있다.
특히 3층 컬렉션을 소개하는 공간은 패션 아이템을 진열하는 곳을 넘어, 공간과 물질로 이루어진 각종 장치물을 통해 방문객과 조화로운 관계를 꾀하며 체험의 장으로 의미를 두었다.
방문자 스스로 참여하는 모든 감각의 체험은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와 개개인이 가진 고유한 정서로 다가가 기억에 닿으면 비로소 진정한 브랜드 경험이 되도록 공간은 상상하지 못한 시도들로 채워져 있다.
아더에러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고객의 니즈를 반영하고 소통을 이루고자 하는 브랜드 가치관과 이들의 가치를 알아본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제품보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이 두 브랜드 공간을 방문하면서 고객이 찾아가고 머물고 싶게 하는 공통 요소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는 낡음과 새로움의 조화로움이다.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과 아더 스페이스 3.0 공간은 우리가 익숙한 콘크리트나 적벽돌의 재료를 활용해 익숙하지만 감각적 이미지로 접근을 유도했다. 반면 내부에는 미래지향적인 오브제나 디지털미디어 아트 등을 적용해 디지털 세대와의 연결을 시도했다. 특히 젠틀몬스터는 매장의 얼굴인 1,2층에 해체 직전의 건물 잔해로 만든 조형물로 과거의 이미지를 연상케 했다면 3층에 위치한 안경매장에는 6족 보행 로봇으로 미래의 이미지를 담았다. 마찬가지로 아더 스페이스는 우주 공간을 연상케 하는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낡음과 새로움을 융합한 독특한 공간을 마련해 소비자들이 경험토록 했다.
둘째는 사고의 전환과 도전정신이다. 두 브랜드는 각 층 공간마다 재료, 아이템, 구조와의 생경한 결합으로 사고의 전환과 브랜드의 도전정신을 보여줌으로써 방문객에게 공간의 가치와 브랜드 정체성의 새로운 인식을 촉구했다. 이들 브랜드는 단순히 우리의 망막 위에 여정으로 머무르는 시각적 이미지만을 추구하기보다는 방문자에게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로 감동과 공감을 얻게 했다.
이렇듯 두 브랜드는 각각의 콘셉트로 공간을 전개했지만 제품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간을 통해 소비자의 감각을 자극하는 공간디자인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셋째는 협업과 다양성으로 고객 스스로 공간을 찾아가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단일 브랜드로는 다양해진 고객 니즈를 충족시켜주기에 한계가 있다. 최근 브랜드들은 협업을 통해 여러 브랜드들을 한 공간에서 통합적 이미지를 구현해 보여주고 있으며, 아티스트와 협업한 제품디자인을 비롯해 3D 기반의 미디어 아트, 오브제 등을 통해 방문객에게 많은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넷째는 휴식 공간 제공이다. 지금까지 패션을 다루는 공간은 방문객에게 온전한 오감을 제공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경험을 중시하는 사회가 도래함으로써 브랜드들은 고객의 오감을 충족시키는 다채로운 제품구성과 공간디자인에 힘을 쓰고 있다. 젠틀몬스터는 브랜드가 가진 미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디저트 카페 ‘누데이크’를 하우스 도산에 선보였으며, 아더 스페이스 3.0은 ‘텅플래닛’ 카페 공간을 제공했다.
패션 공간의 특성상 인간의 오감 중 미각만큼은 향이나 이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했다면 최근에는 휴식공간인 F&B 공간을 제공해 직접적으로 미각에 관한 욕구까지 채우며 완전한 오감 만족을 선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품보다 공간 경험을 우선시했다. 앞서 소개한 브랜드들은 고객 경험을 중시하며 제품보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전달하는 공간이 되도록 오프라인을 디자인했다.
구매행위는 온라인을 통해 간편하고 신속한 쇼핑이 가능하다. 하지만 브랜드에 대한 가치는 다르다.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 오감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최근 브랜드들은 방문객이 공간과 감각으로 조우할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하고 있다. 브랜드 공간을 방문한 소비자는 제품보다는 공간을 즐긴다. 감각을 자극하고 새로운 사고를 유도하는 다양한 오브제와 공간 경험은 결국 브랜드 가치로 이어져 공간을 향유하게 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달돼 소장하고 싶은 브랜드로 각인된다. 젠틀몬스터와 아더에러는 코로나 19로 집콕에 지친 소비자에게 브랜드 공간이 지닌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PS- 이글은 패션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재편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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