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를 방문하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둘러보게 된다. 도쿄 일정에서도 미술관 일정을 잡았는데 이번 미술관 체험은 미술관 관람보다는 미술관의 건축을 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신국립미술관으로 향했다. 도쿄 신국립미술관은 2007년 개관한 일본을 대표하는 전시 공간이다. 총면적 약 14,000㎡에 달하는 일본 최대 규모의 전시장으로, 내외부 모두 시각적으로 완성도가 매우 높은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미술관을 특별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는 규모가 아니라 ‘소장품이 없다는 점’이다.

이곳은 일본에서 유일하게 컬렉션을 보유하지 않은 국립미술관이다. 대신 공모전과 기획전을 중심으로 한 ‘전람회 사업’을 핵심으로 운영된다. 해외의 고전 작품부터 현대미술, 만화, 패션,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전시는 모두 국립신미술관 큐레이터의 기획을 통해 이루어진다. 소장품을 축적하기보다, 지금 이 시대에 보여주어야 할 전시를 끊임없이 갱신하는 방식이다.
전시만 있는 미술관이 아니다: 열린 지식과 교육의 플랫폼


국립신미술관의 역할은 전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곳은 전시, 아트 라이브러리, 교육·공공 프로그램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아트 라이브러리는 모든 방문객에게 무료로 개방되어 있으며, 일본과 해외의 현대미술·디자인·건축 관련 서적과 전시 도록, 해외 미술 잡지까지 폭넓게 열람할 수 있다. ‘닫힌 미술관’이 아니라 ‘열린 미술관’을 지향한다는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다. 또한 전시와 연계한 강연, 작가와의 대화, 심포지엄 등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객이 예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보는 공간에서 배우고 해석하는 공간인 셈이다. 지난 12월에 방문했을때는 그다지 흥미롭게 보고 싶은 전시가 없어서(붓글씨 전시??가 메인) 전시관 주변과 건축만 유심히 둘러보았다.
왜 ‘신(新)미술관’일까
국립신미술관은 독립행정법인 국립미술관 산하의 다섯 번째 미술관이다. 수많은 이름 중 ‘신(新)미술관’이라는 명칭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기존 일본 미술관의 틀에서 벗어난, 전혀 다른 운영 개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소장품이 있어야 미술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과 유사한 형태의 공간이 있다면 ‘미술관’이 아닌 ‘예술회관’으로 불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소장 작품이 단 한 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미술관은 몇 년 뒤의 전시 일정까지 이미 예약될 만큼 높은 신뢰와 기대를 받고 있다.
건축가 쿠로카와 키쇼와 ‘공생’의 미학


이 미술관의 설계는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쿠로카와 키쇼가 맡았다. 그는 “소장품이 없는 루브르 미술관은 상상할 수 없지만, 소장품이 없는 도쿄의 미술관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 인물이다.
보존과 관리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실물 중심의 미술관보다, 기술과 정보, 경험을 중심으로 한 21세기형 미술관이 필요하다는 그의 생각은 이 공간 전체에 녹아 있다.
초 저녁에 방문한 신미술관은 은은한 조명으로 더욱 아름답게 보였고 건축 규모는 압도적이다. 부지면적 약 30,000㎡, 건평 약 48,000㎡, 높이 33.3m로 일본 최대 수준이다. 외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물결치듯 굴곡진 글래스 커튼월이다. 좌우뿐 아니라 상하로도 곡선을 이루며, 유리와 콘크리트의 차가움을 부드럽게 중화시킨다.
이 유리는 자연광을 실내 깊숙이 끌어들이면서도 자외선과 일사열은 차단한다. 면진 구조, 자연 환기, 빗물 재활용 등 친환경 설계 역시 ‘자연과의 공생’이라는 건축가의 철학을 보여준다. 낮에는 태양빛으로 건물이 빛나고, 밤에는 실내 조명이 외부로 퍼져 도시를 밝히는 하나의 거대한 조명이 된다.
내부 공간과 카페, 그리고 예상 밖의 장면


미술관 내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원추형과 역원추형 콘크리트 구조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치 건물 안에 또 다른 건물이 박혀 있는 듯한 인상이다. 수평적으로 안정된 공간 속에서 수직으로 솟은 이 구조물은 공간에 강한 긴장감을 만든다.




이 구조물 상부에는 카페가 자리한다. 2층의 Salon de The Rond는 노천 카페 같은 가벼운 분위기라면, 3층의 Brasserie Paul Bocuse Le Musée는 호텔 레스토랑처럼 차분하고 고급스럽다. 두 공간 모두 천장에 원형 조명이 설치되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감각을 강화한다.
낮에는 아오야마 공원과 주변 녹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별도의 조경 없이도 충분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카페 자체는 과하지 않지만, 위치와 공간이 모든 것을 완성시킨다. 때로는 전시장보다 더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정도다.


도쿄 신국립미술관은 ‘무엇을 소장하고 있는가’보다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열려 있는가’를 묻는 공간이다. 비록 전시는 깊게 보지 못했지만, 그 공간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건축의 심미성과 개념은 충분히 전달됐다. 신미술관은 전시 중심의 운영, 무료로 개방된 지식 공간, 그리고 건축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되는 구조. 이곳은 미술관이라는 개념을 다시 정의하게 만든다.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이미 이 미술관에 관심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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